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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기 ‘홍도’를 활용할 방안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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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3-12-2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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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기생이자 천재예술인이며 후학양성에 전념했던 ‘홍도’ 최계옥을 기리는 추모제가 최근 건천의 한 납골당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제는 홍도를 따르던 후학들이 건립한 묘비가 망실되고 묘지가 무연분묘로 화장돼 안치돼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예를 갖춰 제향하고 사종(시문(詩文)에 뛰어난 사람을 높여 이르는 말)의 고귀한 뜻을 받들고자 마련됐다.
홍도는 1778년, 정조2년에 태어나 1822년까지 생존하는 동안 시와 서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으며 무엇보다도 미모가 뛰어났다. 20세에 경주부윤 유한모의 천거로 상의원 상궁에 선발돼 뛰어난 가무로 명성을 나라 안에 크게 떨쳤고 정조의 아낌을 받았다.
정조로부터 홍도라는 별호를 받은 것을 보면 매우 특이한 인물임에 틀림이 없다. 32세에 경주로 낙향한 홍도가 남긴 발자취는 더욱 뚜렷하다. 45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13년 동안 민중의 속악을 발굴 장려하고 후학양성에 정열을 바쳐 후학들이 최고의 스승 사종으로 추모했다. 후사가 없어 재산을 친척들에게 고루 나누게 하고 묘비는 1851년 8월(철종2년)에 도지동 산에 세워졌다.
1990년 8월 묘비가 처음 발견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나 이후 도동 구획정리사업에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누군가 없애버렸고, 무연분묘로 방치되다가 2005년 11월 개장돼 납골당에 봉안됐다.
뜻있는 시민들이 홍도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역이 배출한 인재 중에는 유명정치인도 있고 학자도 있을 수 있지만 탤런트 기질을 가졌던 ‘홍도’가 현대 축제와 이벤트 트렌드에 맞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조선시대 기생은 흔히 말하는 접대부가 아니다.
얼굴도 미인이었지만 춤과 노래, 서예와 시문에 능한 만능 탤런트 기질을 가진 여성들이었다. 요즘 인기 연예인에 버금가는 예능인이었던 만큼 이를 소재로 한 축제와 이벤트는 당연히 경쟁력이 있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국악협회, 연예인협회, 모델협회 등과 협력한다면 경주다운 축제가 탄생 할 수 있다. 가장 한국다운 축제, 가장 경주다운 축제가 기생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며 발표하던 것에서 탄생 할 수도 있다. 그 고장이 낳은 인물(celebrity)과 마케팅(marketing)을 결합한 ‘셀렙마케팅(celeb marketing)’의 소재로 ‘홍도’는 손색이 없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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