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수사, 용두사미로 끝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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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신문 작성일14-07-30 19:57본문
오늘은 세월호 참사 107일 째다. 아직까지 세월호 실종자 10명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임정엽)는 지난 29일 단원고 학생들의 법정 증언을 들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이미 알져진 사실이지만 생생한 증언이 이어졌다.
A양은 "배가 기울면서 방안에 물이 들어와 친구들과 서로 도와가며 복도로 나갔는데 박지영(승무원) 언니가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이후 옆으로 굴러 떨어지셨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언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고 증언했다. B양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가만히 있으면 구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왔다. 어떤 아저씨들이 소방호스를 연결해줘서 그걸 잡고 가까스로 벽을 타고 탈출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C양은 "배 안에 물이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물로 뛰어들었다. 같이 뛰어든 친구 중 1명은 갑판으로 나갔는데 휩쓸린 친구는 나오지 못했다. 그 친구가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이 떠올라가지고… "라고 말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원들이) 초기에 침몰 상황을 제대로 알려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친구들은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가 나 죽은 게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죽은 것"이라는 호소는 참사 원인의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이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뒷수습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참사 원인 제공의 핵심 인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이 숨진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하고 유 씨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이어 운전기사 양회정씨가 자수함에 따라 검찰은 유 씨 도피 핵심 조력자로 지목된 국내에 있는 유 씨 일가와 측근의 신병을 모두 확보했다. 따라서 검찰은 국내 추적수사를 모두 끝내고, 경찰과 함께 꾸렸던 추적팀도 해산했다. 그런데 관련자 모두다 유 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함으로써 '유 씨 일가 비리'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제 세월호 분향소도 잊혀지고 있다. 부산시와 경기도 부천시는 분향소를 완전히 철거했으며, 서울시는 대기자를 위한 천막 등 일부 시설을 철거했다. 대구시와 경상남도는 분향소를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옮겼다.
국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무심한 세월은 참사 기억을 점차 희석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100일이 넘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새로운 국민적 불안이 고개를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계속 가슴에 품고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슬픔은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절대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픔은 잊되 적폐(積弊)를 조목조목 들춰내겠다는 초심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망각(忘却)의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총체적 부실'도 함께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면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A양은 "배가 기울면서 방안에 물이 들어와 친구들과 서로 도와가며 복도로 나갔는데 박지영(승무원) 언니가 구명조끼를 입으라고 했다. 이후 옆으로 굴러 떨어지셨는데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언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고 증언했다. B양은 "침착하게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가만히 있으면 구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왔다. 어떤 아저씨들이 소방호스를 연결해줘서 그걸 잡고 가까스로 벽을 타고 탈출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C양은 "배 안에 물이 차올라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물로 뛰어들었다. 같이 뛰어든 친구 중 1명은 갑판으로 나갔는데 휩쓸린 친구는 나오지 못했다. 그 친구가 바닷물에 잠기는 모습이 떠올라가지고… "라고 말하다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선원들이) 초기에 침몰 상황을 제대로 알려줬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친구들은 수학여행 가다가 사고가 나 죽은 게 아니라 사고 후 대처가 잘못돼 죽은 것"이라는 호소는 참사 원인의 정곡을 찌르는 촌철살인이다.
그러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뒷수습은 어디까지 와 있는가. 참사 원인 제공의 핵심 인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이 숨진 것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검찰은 '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하고 유 씨에 대한 수사를 종결했다. 이어 운전기사 양회정씨가 자수함에 따라 검찰은 유 씨 도피 핵심 조력자로 지목된 국내에 있는 유 씨 일가와 측근의 신병을 모두 확보했다. 따라서 검찰은 국내 추적수사를 모두 끝내고, 경찰과 함께 꾸렸던 추적팀도 해산했다. 그런데 관련자 모두다 유 씨와의 연관성을 부인함으로써 '유 씨 일가 비리'의 본질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이제 세월호 분향소도 잊혀지고 있다. 부산시와 경기도 부천시는 분향소를 완전히 철거했으며, 서울시는 대기자를 위한 천막 등 일부 시설을 철거했다. 대구시와 경상남도는 분향소를 좀 더 한적한 곳으로 옮겼다.
국회에서는 '세월호 특별법'이 여전히 오리무중인데 무심한 세월은 참사 기억을 점차 희석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100일이 넘도록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새로운 국민적 불안이 고개를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계속 가슴에 품고 가자는 얘기가 아니다. 슬픔은 시간이 가면 잊혀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절대 용두사미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픔은 잊되 적폐(積弊)를 조목조목 들춰내겠다는 초심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생물학적 망각(忘却)의 흐름을 타고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총체적 부실'도 함께 떠내려가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눈을 부릅떠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면 아직 제대로 시작조차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경북신문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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