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문의 페르시안나이트] 중세 페르시아의 화려한 왕실 문화, 궁전 벽화에 고스란히 남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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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작성일19-07-25 19:12본문
↑↑ 체헬소툰 내부의 세밀화 중 유럽과의 교류가 빈번했음을 알리는 그림. 여기에 등장하는 악기와 복식은 당대 페르시아 문명을 짐작하게 해 준다.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사파비왕조가 중국과의 교류는 물론 유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 벽화는 체헬소툰에 걸린 벽화 중에 가장 압도적이다. 왕이 주관하는 행사에 유럽에서 온 사신이 참석하는 장면을 담은 세밀화는 당대 왕실 문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료다.
↑↑ 체헬소툰 궁전의내부. 천장의 화려한 문양은 외부의 소박함과 달리 화려했던 이슬람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밀화 통해 보는 중세 페르시아의 왕실 모습 생생
왕과 유럽의 사신은 카펫 위 상석에 앉았고 양쪽으로 페르시아 신료들과 유럽 사신들이 나란히 앉았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음식 대신 악사와 무희들의 연희가 베풀어진다. 자세히 보면 재미난 악기들이 보인다.
왼쪽의 악사 중 앞의 악사가 연주하는 것은 세타르다. 이 악기는 인도로 전해져 힌두음악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뒤에 앉은 악사가 연주하는 악기는 카만체다. 카만체는 유럽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의 모태가 된다. 그 뒤로 탄현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둘 더 있고 오른쪽으로 건너가면 다프라는 타악기를 두드리는 악사가 있다. 다프는 발현악기, 찰현악기와는 달리 무희들의 몸동작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타프는 페르시아와 아랍에 걸쳐 폭넓게 분포된 타악기다.
무대를 왕실에서 사막으로 옮기면 더 재미있어 진다. 사막의 깊은 밤, 길고 고된 여정에 지쳐 모닥불을 피운 카라반들이 낙타들에 둘러싸여 연주로 피로를 풀 때면, 모닥불을 겨냥하고 달려들던 사막늑대와 표범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상상된다.
체헬소툰의 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려하다. 금색으로 칠해진 페르시안 문양이 어지럼증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현란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칠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희미해진 곳이 있지만 아치형 창틀로 스며드는 햇살에 반사될 때 천장은 강대했던 사파비왕조의 왕권을 짐작하게 할 정도다. 체헬소툰은 지금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 이스파한의 최고 호텔인 압바스 호텔의 정원. 이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와 연결된다.
■또 하나의 천국 하쉬트 베헤쉬트
체헬소툰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궁전이 있다. 하쉬트 베헤쉬트다. 이 궁전은 1966년 솔레이만 왕 때 만들어졌다. 이 궁전의 이름을 짓는데도 페르시안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발동됐다. 하쉬트 베헤쉬트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8개의 천국'이라는 의미다. 쿠란에서 천국은 7개의 층으로 돼 있다고 썼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궁전이 쿠란에 나오는 7개의 천국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은 이스파한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저녁 무렵 마땅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이란 사람들은 쿠란에 등장하는 천국과도 같은 정원으로 음식을 가져와 카펫을 깐다. 그리고 가족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 궁전 옆에는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카라반사라이'가 있다. 실크로드상에 있는 도시에는 대부분 카라반사라이가 존재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곳도 있지만 몇 군데의 도시에는 생생하게 보존돼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거나 여행자 숙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쉬트 베헤쉬트 옆의 카라반사라이는 이란 최고의 호텔이라고 일컬어지는 압바스호텔로 변해 있다. 압바스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수백년 전 낙타를 몰고 수만리를 걸어서 온 카라반들이 감발을 벗어 털고 노곤한 몸을 뉘었던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꿈자리에서 그들의 거친 코골이를 들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압바스 호텔의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과 이어져 있다. 과거 이 정원의 이름은 '바게 볼볼'이라고 불렀다. 볼볼은 페르시아어로 '나이팅게일'을 뜻한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지금 오렌지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풍성하게 달린 노란 오렌지 나무 아래 고급스런 벤치에 앉아 있으면 페르시아 문화의 한가운데 와 앉아 있는 만족스러움으로 들뜬 마음이 된다.
↑↑ 이스파한의 가로수길인 차하르바그. 이 가로수길은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이다.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 걸으면 이스파한이 보인다
하쉬트 베헤쉬트를 나오면 길고 곧은 도로가 이어진다. 그 도로는 이스파한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길가에는 무성한 잎을 드리운 가로수가 도열해 있다. 이 길이 바로 세계 최초의 가로수 길인 차하르 바그다. 사파비왕조가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조성한 이 길은 당시 우마차가 다니는 길을 터놓는 데만 집중했던 모든 국가들과는 달리 과실수와 정원수들을 심어 도시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었다. 당대의 유럽 도심 도로들이 오물에 뒤덮이고 삭막했던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발상이었다.
처음 조성할 때보다 훨씬 초라해지고 삭막해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모습도 세계 어느 도로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곧고 아름답다. 높은 가로수 아래 벤치를 설치해 시민들이 길을 걷다가 언제라도 앉아서 쉬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대기오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차하르바그의 가로수가 아니었다면 이스파한도 테헤란의 숨 막히는 도심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선견지명을 느낄 수가 있다.
↑↑ 이스파한 시민들의 일상. 성일인 금요일 이스파한 시민들은 대부분 모스크로 향한다.
사파비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던 사산왕조가 이슬람 세력에 무너진 후 새롭게 재건된 왕조다. 사산왕조 이후 명멸했던 이슬람 왕조들은 페르시아 전역을 통일한 왕조가 없었다가 사파비왕조에 들어 다시 페르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됐다. 중세 이란의 가장 강대한 왕조였다.
이상문 iou518@naver.com
[경북신문=이상문기자] 지난해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으로 한때 급물살을 탈 것으로 예상했던 대이란 교류가 다시 막혔다. 그러나 이란은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지로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익숙하지만 낯선 이란의 이야기를 통해 21세기 실크로드를 꿈꿔본다.
사파비왕조가 중국과의 교류는 물론 유럽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을 알리는 벽화는 체헬소툰에 걸린 벽화 중에 가장 압도적이다. 왕이 주관하는 행사에 유럽에서 온 사신이 참석하는 장면을 담은 세밀화는 당대 왕실 문화를 짐작하게 해주는 소중한 사료다.
↑↑ 체헬소툰 궁전의내부. 천장의 화려한 문양은 외부의 소박함과 달리 화려했던 이슬람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세밀화 통해 보는 중세 페르시아의 왕실 모습 생생
왕과 유럽의 사신은 카펫 위 상석에 앉았고 양쪽으로 페르시아 신료들과 유럽 사신들이 나란히 앉았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음식 대신 악사와 무희들의 연희가 베풀어진다. 자세히 보면 재미난 악기들이 보인다.
왼쪽의 악사 중 앞의 악사가 연주하는 것은 세타르다. 이 악기는 인도로 전해져 힌두음악의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뒤에 앉은 악사가 연주하는 악기는 카만체다. 카만체는 유럽으로 건너가 바이올린의 모태가 된다. 그 뒤로 탄현악기를 연주하는 악사가 둘 더 있고 오른쪽으로 건너가면 다프라는 타악기를 두드리는 악사가 있다. 다프는 발현악기, 찰현악기와는 달리 무희들의 몸동작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타프는 페르시아와 아랍에 걸쳐 폭넓게 분포된 타악기다.
무대를 왕실에서 사막으로 옮기면 더 재미있어 진다. 사막의 깊은 밤, 길고 고된 여정에 지쳐 모닥불을 피운 카라반들이 낙타들에 둘러싸여 연주로 피로를 풀 때면, 모닥불을 겨냥하고 달려들던 사막늑대와 표범들이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상상된다.
체헬소툰의 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화려하다. 금색으로 칠해진 페르시안 문양이 어지럼증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현란하다. 오랜 세월이 흘러 칠이 벗겨지기 시작했고 군데군데 희미해진 곳이 있지만 아치형 창틀로 스며드는 햇살에 반사될 때 천장은 강대했던 사파비왕조의 왕권을 짐작하게 할 정도다. 체헬소툰은 지금 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 이스파한의 최고 호텔인 압바스 호텔의 정원. 이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와 연결된다.
■또 하나의 천국 하쉬트 베헤쉬트
체헬소툰을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또 하나의 궁전이 있다. 하쉬트 베헤쉬트다. 이 궁전은 1966년 솔레이만 왕 때 만들어졌다. 이 궁전의 이름을 짓는데도 페르시안인들의 시적 상상력이 발동됐다. 하쉬트 베헤쉬트라는 단어는 페르시아어로 '8개의 천국'이라는 의미다. 쿠란에서 천국은 7개의 층으로 돼 있다고 썼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이 궁전이 쿠란에 나오는 7개의 천국에 비견될 정도로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은 이스파한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저녁 무렵 마땅한 엔터테인먼트가 없는 이란 사람들은 쿠란에 등장하는 천국과도 같은 정원으로 음식을 가져와 카펫을 깐다. 그리고 가족들이 둥그렇게 모여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 궁전 옆에는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카라반들이 숙소로 사용했던 '카라반사라이'가 있다. 실크로드상에 있는 도시에는 대부분 카라반사라이가 존재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곳도 있지만 몇 군데의 도시에는 생생하게 보존돼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거나 여행자 숙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쉬트 베헤쉬트 옆의 카라반사라이는 이란 최고의 호텔이라고 일컬어지는 압바스호텔로 변해 있다. 압바스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수백년 전 낙타를 몰고 수만리를 걸어서 온 카라반들이 감발을 벗어 털고 노곤한 몸을 뉘었던 곳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다. 꿈자리에서 그들의 거친 코골이를 들을 수 있다면 행운이다.
압바스 호텔의 정원은 하쉬트 베헤쉬트의 정원과 이어져 있다. 과거 이 정원의 이름은 '바게 볼볼'이라고 불렀다. 볼볼은 페르시아어로 '나이팅게일'을 뜻한다. 나이팅게일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정원에는 지금 오렌지 나무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다. 풍성하게 달린 노란 오렌지 나무 아래 고급스런 벤치에 앉아 있으면 페르시아 문화의 한가운데 와 앉아 있는 만족스러움으로 들뜬 마음이 된다.
↑↑ 이스파한의 가로수길인 차하르바그. 이 가로수길은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이다.
■세계 최초의 가로수길 걸으면 이스파한이 보인다
하쉬트 베헤쉬트를 나오면 길고 곧은 도로가 이어진다. 그 도로는 이스파한의 중심을 가로지르며 길가에는 무성한 잎을 드리운 가로수가 도열해 있다. 이 길이 바로 세계 최초의 가로수 길인 차하르 바그다. 사파비왕조가 이스파한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조성한 이 길은 당시 우마차가 다니는 길을 터놓는 데만 집중했던 모든 국가들과는 달리 과실수와 정원수들을 심어 도시를 한결 풍성하게 만들었다. 당대의 유럽 도심 도로들이 오물에 뒤덮이고 삭막했던 것에 비한다면 엄청난 발상이었다.
처음 조성할 때보다 훨씬 초라해지고 삭막해졌다고 하지만 현재의 모습도 세계 어느 도로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곧고 아름답다. 높은 가로수 아래 벤치를 설치해 시민들이 길을 걷다가 언제라도 앉아서 쉬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어나는 교통량으로 대기오염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지만 차하르바그의 가로수가 아니었다면 이스파한도 테헤란의 숨 막히는 도심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페르시아인들의 선견지명을 느낄 수가 있다.
↑↑ 이스파한 시민들의 일상. 성일인 금요일 이스파한 시민들은 대부분 모스크로 향한다.
사파비 왕조는 조로아스터교를 신봉하던 사산왕조가 이슬람 세력에 무너진 후 새롭게 재건된 왕조다. 사산왕조 이후 명멸했던 이슬람 왕조들은 페르시아 전역을 통일한 왕조가 없었다가 사파비왕조에 들어 다시 페르시아는 하나의 국가가 됐다. 중세 이란의 가장 강대한 왕조였다.
이상문 iou51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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