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칼럼] 술과 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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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태수 작성일19-07-28 18:33본문
↑↑ 시인 이태수[경북신문=시인 이태수] 경찰청에 따르면 도로교통법 개정안 '제2윤창호법' 시행 이후 지난 한 달 동안 음주운전이 크게 줄었다고 한다. 단속 기준이 면허정지는 혈중알코올농도 0.05%에서 0.03%로, 면허취소는 0.10에서 0.08로 낮아졌음에도 하루 평균 334건에서 296건으로 11.4%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음주단속 강화로 술 마시는 시간대가 밤 10시 이전으로 당겨지고, 낮에 반주를 드는 경우도 거의 사라지는 등 음주문화 분위기가 크게 달라지는 추세라고도 한다.
어떤 모로 보더라도 반가운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술꾼과 술집들의 '수난시대'(?)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아직 술을 가까이하는 터라 음주문화에 대한 한담(閑談)을 늘어놓고 싶어지는 건 한여름의 무더운 장마철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변화에도 밝음과 그늘이 있게 마련이지 않을까.
술을 즐기는 것은 시인·묵객이 아니더라도 동서(東西)가 한결같다. 다만 동양은 조용히 마시는 미덕을, 서양은 떠들고 춤추는 전통이 있다. '첫 잔은 갈증 해소를, 둘째 잔은 영양을, 셋째 잔은 유쾌함을,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는 로마 속담도 있지만, 유교사회에서는 '비록 말술을 마셔도 말이 없어야 군자(醉中不言眞君子)'라며 주사(酒邪)를 꺼렸었다.
이태백(李太白)이 '장진주(將進酒)'에서 예찬한 술은 호박 빛깔의 액체였으며, 소동파(蘇東坡)는 술 가운데 진일주(眞一酒)를 사랑했다. 호박 빛깔의 술을 마신 이태백의 취흥은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고, 진일주에 취한 소동파는 '눈 녹이고 구름을 헤쳐/유즙(乳汁)을 얻어서/빚어진 진일주… 그릇도 맑고 우물도 맑고 안팎이 맑구나'라고 노래했었다. 이태백은 색깔이 있고 정열적인 술을, 소동파는 거울처럼 맑은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라는 키케로의 명언도 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덕 있는 치자(治者)는 애주가들이 많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교훈처럼 술 때문에 물의를 빚고 폐해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술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경구도 있다.
차제에 술과 거리가 가까운 담배에 대한 이야기들도 새삼 떠오른다. 충남 공주에서 전해오는 담배에 대한 설화는 에로틱하다. 한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죽어서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그 기생이 죽자 무덤에 낯선 풀이 돋아났다. 그 풀이 바로 담배라고 한다. 입으로 빠는 기호품이 된 연원을 말하는 설화인 셈이다.
담배는 우리 설화에도 그려지고 있듯이 정념(情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권위와 멋, 정한(情恨)과 여유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다. 이젠 옛 이아기가 됐지만,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곰방대 터는 소리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공방대를 소리 내어 두드리면 집안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할머니의 담배는 인내와 한(恨)의 출구를 여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듯이 마도로스 파이프는 여유와 멋의 의미를 지닌 경우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담배는 1558년 스페인왕 필립 2세가 관상용으로 재배하면서 유럽에 전파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광해군(光海君) 10년(1618년)에 들어왔다. 우리 품종 중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남초' 또는 '왜초'로, 중국 북경이나 서양에서 도입된 것은 '서초'로 불리면서 오랜 세월 동안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은 그런 뉘앙스들 때문일 것이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날이 갈수록 담배 애호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는 '흉측한 사진'들도 담뱃갑에 도배돼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공공장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마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 오래다. 늦은 밤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아무튼 죄짓는 기분으로 술과 담배를 피우고 마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바깥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오며,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도 술 마시는 버릇을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술과 담배를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긴 문제다.
시인 이태수 kua348@naver.com
어떤 모로 보더라도 반가운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술꾼과 술집들의 '수난시대'(?)라는 느낌도 없지 않다. 아직 술을 가까이하는 터라 음주문화에 대한 한담(閑談)을 늘어놓고 싶어지는 건 한여름의 무더운 장마철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변화에도 밝음과 그늘이 있게 마련이지 않을까.
술을 즐기는 것은 시인·묵객이 아니더라도 동서(東西)가 한결같다. 다만 동양은 조용히 마시는 미덕을, 서양은 떠들고 춤추는 전통이 있다. '첫 잔은 갈증 해소를, 둘째 잔은 영양을, 셋째 잔은 유쾌함을,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 마신다'는 로마 속담도 있지만, 유교사회에서는 '비록 말술을 마셔도 말이 없어야 군자(醉中不言眞君子)'라며 주사(酒邪)를 꺼렸었다.
이태백(李太白)이 '장진주(將進酒)'에서 예찬한 술은 호박 빛깔의 액체였으며, 소동파(蘇東坡)는 술 가운데 진일주(眞一酒)를 사랑했다. 호박 빛깔의 술을 마신 이태백의 취흥은 하늘을 나는 기쁨이었고, 진일주에 취한 소동파는 '눈 녹이고 구름을 헤쳐/유즙(乳汁)을 얻어서/빚어진 진일주… 그릇도 맑고 우물도 맑고 안팎이 맑구나'라고 노래했었다. 이태백은 색깔이 있고 정열적인 술을, 소동파는 거울처럼 맑은 술을 좋아했던 것 같다.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으로부터는 사려분별을 기대하지 말라'라는 키케로의 명언도 있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덕 있는 치자(治者)는 애주가들이 많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람이 술을 마시고, 술이 술을 마시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교훈처럼 술 때문에 물의를 빚고 폐해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술은 전쟁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경구도 있다.
차제에 술과 거리가 가까운 담배에 대한 이야기들도 새삼 떠오른다. 충남 공주에서 전해오는 담배에 대한 설화는 에로틱하다. 한 남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자 죽어서라도 입을 맞추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그 기생이 죽자 무덤에 낯선 풀이 돋아났다. 그 풀이 바로 담배라고 한다. 입으로 빠는 기호품이 된 연원을 말하는 설화인 셈이다.
담배는 우리 설화에도 그려지고 있듯이 정념(情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권위와 멋, 정한(情恨)과 여유의 상징으로 여겨져 오기도 했다. 이젠 옛 이아기가 됐지만,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곰방대 터는 소리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공방대를 소리 내어 두드리면 집안은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할머니의 담배는 인내와 한(恨)의 출구를 여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듯이 마도로스 파이프는 여유와 멋의 의미를 지닌 경우다.
원산지가 남아메리카인 담배는 1558년 스페인왕 필립 2세가 관상용으로 재배하면서 유럽에 전파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조선조 광해군(光海君) 10년(1618년)에 들어왔다. 우리 품종 중 일본을 통해 들어온 것은 '남초' 또는 '왜초'로, 중국 북경이나 서양에서 도입된 것은 '서초'로 불리면서 오랜 세월 동안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해온 것은 그런 뉘앙스들 때문일 것이다.
세태의 변화에 따라 날이 갈수록 담배 애호가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흡연은 건강에 해롭다는 '흉측한 사진'들도 담뱃갑에 도배돼 있다.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직장이나 공공장소는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마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지 오래다. 늦은 밤 아파트 주위를 서성거리며 담배를 피우는 남성들의 모습은 이제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아무튼 죄짓는 기분으로 술과 담배를 피우고 마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가 진도가 잘 나가지 않으면 바깥에 나가 담배를 피우고 오며,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도 술 마시는 버릇을 여태 버리지 못하고 있다. 술과 담배를 끊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긴 문제다.
시인 이태수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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