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진 스마트 소설] 우리 모두의 빛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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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07-29 19:24본문
↑↑ 소설가 서유진[경북신문=소설가 서유진] 어쩌다가 이민 간 친구 연두가 캐나다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지….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주식을 모두 손절매해야 겨우 보석금을 마련할 수 있다. 처음부터 연두의 존재가 그녀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두를…. 그녀는 창밖을 바라본다. 산수유와 목련과 벚꽃나무와… 그것들이 피워낸 무성한 연둣빛 잎들이 허공에 펼쳐진 초원 같다. 연두가 도서관으로 찾아왔던 작년 그날도 연둣빛 계절이었다. 그녀는 먼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른 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저 눈부신 연둣빛에 대한 편견과, 연두가 그녀에게 베풀었던 일과, 그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연둣빛을 보면 언제나 노랑을 떠올렸어. 녹색에 가깝지 않으냐는 반문을 받으면 그 색의 근원이 노랑이라고 고집했지. Ingrid RideI은 '색의 신비'에서 노랑이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어. 생명과 죽음, 선과 악, 이해와 배반, 낙관주의와 시기심, 신비로우면서 음기 같은, 모순을 안고 있는 색이라지. 그때는 매사에 꼬였던 나였지. 하고많은 긍정정을 두고 부정적인 생각만 뇌리에 가득 차있었으니. 더구나 노랑을 연두에다 연결하다니!―이 말은 어이없다는 연두의 대꾸였지. 그러나 그날, 그녀가 바라본 연둣빛에서는 새록새록 잠든 아기 숨소리 같은 생명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예전에는 왜 그토록 싫어했을까. 연두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그 애 얼굴을 떠올리는데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지. 하이힐 뒤꿈치를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계단을 내려가며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어.
"놀랐지? 너, 지금 내가 무섭지?"
나는 저, 저, 더듬거렸어. 무섭고말고. 십 년 전에 빌린 거액의 돈을 갚지 못해 도망쳐 왔는데 귀신같이 찾아냈으니. 연두가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며 전화를 끊은 후 허둥지둥 열람실로 올라갔지.
그녀는 부산에서 야반도주하듯 떠나온 후 연두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십 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빌린 돈에 대해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IC에서 도서관까지 오려면 1시간가량 걸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녀는 곧 체념했다.
도망칠 곳도 없었던 거지. 자리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 안고 연두를 기다리는데 거대한 바위가 나를 향해 굴러오는 것 같았어. 책상 위에 '증권거래의 핵심'이라는 책을 펴 놓고 그래프의 가파른 내림세를 보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지. 투자액 전부가 부채인 주식이 살아날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
열람실은 여느 때보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취준생들의 시험이 가깝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후, 후, 잦은 한숨을 쉬자 옆자리의 청년이 볼펜을 탁, 소리 내어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 듯 청년도 그녀처럼 창밖을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힌 하늘빛은 베이비 블루였다. 연두가 연두색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하늘색이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네게는 미안하지만, 연둣빛은 어쩐지 음험하고 나태해 보인다고 했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 연두는 희망이 움트는 색이야."
연두가 옹골지게 반격하자 단지 자신의 취향 문제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그녀가 서둘러 변명했다.
하지만 처음 연두를 만났을 때 왠지 비호감이었지. 소문이 먼저 선입견을 만들었고, 비호감이 구체화한 것은 연두가 다른 친구 집에서 머리핀을 슬쩍하는 현장을 봤기 때문인지 몰라. 연두가 돌아가고 나면 반드시 예쁜 액세서리가 없어진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정작 연두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았지. 연두는 정말 나를 좋아했어. 짝사랑하는 연인처럼 따라다녀서 귀찮기도 했지. 나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모르는 친구가 없었어. 하지만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거리를 잘 조정하며 연두의 도벽을 지켜보기만 했지.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다.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주식을 모두 손절매해야 겨우 보석금을 마련할 수 있다. 처음부터 연두의 존재가 그녀에게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두를…. 그녀는 창밖을 바라본다. 산수유와 목련과 벚꽃나무와… 그것들이 피워낸 무성한 연둣빛 잎들이 허공에 펼쳐진 초원 같다. 연두가 도서관으로 찾아왔던 작년 그날도 연둣빛 계절이었다. 그녀는 먼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모른 척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저 눈부신 연둣빛에 대한 편견과, 연두가 그녀에게 베풀었던 일과, 그날의 감동을 떠올리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연둣빛을 보면 언제나 노랑을 떠올렸어. 녹색에 가깝지 않으냐는 반문을 받으면 그 색의 근원이 노랑이라고 고집했지. Ingrid RideI은 '색의 신비'에서 노랑이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고 했어. 생명과 죽음, 선과 악, 이해와 배반, 낙관주의와 시기심, 신비로우면서 음기 같은, 모순을 안고 있는 색이라지. 그때는 매사에 꼬였던 나였지. 하고많은 긍정정을 두고 부정적인 생각만 뇌리에 가득 차있었으니. 더구나 노랑을 연두에다 연결하다니!―이 말은 어이없다는 연두의 대꾸였지. 그러나 그날, 그녀가 바라본 연둣빛에서는 새록새록 잠든 아기 숨소리 같은 생명의 싹이 움트고 있었다.
예전에는 왜 그토록 싫어했을까. 연두 때문인지도 모른다며 그 애 얼굴을 떠올리는데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지. 하이힐 뒤꿈치를 들고 도서관 밖으로 나갔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계단을 내려가며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했어.
"놀랐지? 너, 지금 내가 무섭지?"
나는 저, 저, 더듬거렸어. 무섭고말고. 십 년 전에 빌린 거액의 돈을 갚지 못해 도망쳐 왔는데 귀신같이 찾아냈으니. 연두가 도서관으로 찾아오겠다며 전화를 끊은 후 허둥지둥 열람실로 올라갔지.
그녀는 부산에서 야반도주하듯 떠나온 후 연두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번호를 바꿨다. 십 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빌린 돈에 대해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IC에서 도서관까지 오려면 1시간가량 걸릴 것이다. 지금이라도 도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녀는 곧 체념했다.
도망칠 곳도 없었던 거지. 자리로 돌아와 머리를 감싸 안고 연두를 기다리는데 거대한 바위가 나를 향해 굴러오는 것 같았어. 책상 위에 '증권거래의 핵심'이라는 책을 펴 놓고 그래프의 가파른 내림세를 보면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지. 투자액 전부가 부채인 주식이 살아날 희망이 보이지 않았어.
열람실은 여느 때보다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는데 취준생들의 시험이 가깝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후, 후, 잦은 한숨을 쉬자 옆자리의 청년이 볼펜을 탁, 소리 내어 내려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부가 잘 되지 않는 듯 청년도 그녀처럼 창밖을 바라보다 자리를 떴다. 모처럼 미세먼지가 걷힌 하늘빛은 베이비 블루였다. 연두가 연두색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그녀는 하늘색이 더 좋다고 했다. 그리고 네게는 미안하지만, 연둣빛은 어쩐지 음험하고 나태해 보인다고 했다.
"길 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 연두는 희망이 움트는 색이야."
연두가 옹골지게 반격하자 단지 자신의 취향 문제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라고 그녀가 서둘러 변명했다.
하지만 처음 연두를 만났을 때 왠지 비호감이었지. 소문이 먼저 선입견을 만들었고, 비호감이 구체화한 것은 연두가 다른 친구 집에서 머리핀을 슬쩍하는 현장을 봤기 때문인지 몰라. 연두가 돌아가고 나면 반드시 예쁜 액세서리가 없어진다고 말들이 많았지만 정작 연두 자신은 아랑곳하지 않았지. 연두는 정말 나를 좋아했어. 짝사랑하는 연인처럼 따라다녀서 귀찮기도 했지. 나에 대한 극진한 마음을 모르는 친구가 없었어. 하지만 나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는 거리를 잘 조정하며 연두의 도벽을 지켜보기만 했지.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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