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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진 스마트소설] 우리 모두의 빛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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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진 작성일19-08-0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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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서유진[경북신문=소설가 서유진] 그녀는 대학에 진학했고, 연두는 취업해서 각자 다른 길을 가게 되었다. 생리 때의 도벽이 화제가 될 때 가끔 연두를 생각하는 정도로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개나리를 보며 춘곤증에 무료했던 어느 날, 방문해 달라는 간곡한 전화를 받은 그녀는 연두가 운영하는 학원을 찾아갔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연두가, 피아노 실력이 나보다 낫지 않은 연두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다니!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했지.

  "너도 차려봐. 학부모들이 학적부까지 헤집지는 않아. 꼬맹이들 가르치는데 상관있겠어?"

  수강생이 거의 초등학생이라지만 벽에 걸린 낯선 졸업장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연두에게 신뢰감도, 일말의 부러움도 느낀 적이 없었는데, 학원의 세련된 인테리어를 휘둘러보는 동안 마음이 뒤숭숭해지고 가슴이 싸해졌지. 연두의 월수입이 잘나가는 사업가인 남편에게 받는 내 생활비를 훨씬 웃돌았지.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올랐어. 손부채질을 하다 핸드백에서 콤팩트를 꺼내 거울을 봤는데 두껍게 바른 파운데이션이 밀려 얼룩덜룩했어. 파우더를 치는데 연두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지.

  "너무 하얘. 네 피부 톤에 맞아야지. 한 톤 낮추지 그래"

  그때 내가 이렇게 대꾸했지.

  "난 하얀 게 좋아.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하는 동요 알지? '파란 마음 하얀 마음' 말이야. 뽀얗게 분을 바르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하아얀 마음, 하고 힘주어 말하고는 손거울 사이로 연두의 표정을 훔쳐봤어. 애정이 듬뿍 담긴 선망의 눈빛이 지금도 아른거려.

  "그래, 하얀 마음…."

  연두는 조금 쓸쓸해진 표정으로 머리를 끄떡였지. 그리곤 진홍색 립스틱을 바른 내 입술을 보더니 나무라듯 말했어.

  "너무 시뻘겋지 않니? 넌 이목구비가 뚜렷해서 화장이 진하면 야해 보여"

  "난 새빨간 게 좋아. 정열적이잖아. 너도 발라봐.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 거야. 매운 고추를 먹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스트레스가 풀려. 무료하고 의욕이 없을 때 바르면 집안 먼지를 털어내고 싶어질 거야"

  화장을 고치는 동안 연두는 열린 핸드백을 만지작거렸지.

  "어머. 이 동전 지갑 너무 예쁘다. 웬 동전을 이렇게 많이 갖고 다녀. 무겁지 않아?"

  "비상금이야. 서울역에서 타서 종로5가에 내려서야 가방이 찢겼다고 누가 알려줬는데,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어. 어떤 학생에게 동전을 빌려 집에 전화를 했지 뭐야. 그때부터 동전 지갑을 꽉 채우는 버릇이 생겼어."

  동전 지갑은 인생살이에서 최소한의 생존금 같은 거라고 덧붙였을 때 연두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였지.

  여고 시절에는 연두가 그녀의 가정 형편을 부러워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의 사업이 날로 번창했고, 그녀는 너무 안락해서 삶에 권태가 날 지경이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 회사가 부도 위기를 맞아 그녀가 발 벗고 나섰다. 묶인 부동산이 있었기에 연두가 선뜻 거액을 빌려주었다. 그녀는 이미 그 땅이 경매에 넘어간 줄 알지 못했다. 연두의 전화를 받는 일이 곤혹스럽게 되었다. 결국 그녀는 파산했고, 도망쳤고, 소식을 끊었다. 베트남으로 피해간 남편은 소식이 없다. <계속>
소설가 서유진   kua34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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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