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삶에 지쳐 힘든 마음, 가뿐히 비워내다 > 실시간

본문 바로가기

실시간

[제3회 경북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삶에 지쳐 힘든 마음, 가뿐히 비워내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장성재 작성일21-08-18 10:25 조회33,489회 댓글0건

본문

↑↑ 한순희씨   
[경북신문=장성재기자] [금상] 도산서원의 향기를 따라-한순희
 
  나는 평소에 고택을 흠모했다. 다행히도 건축사인 남편을 따라 자연스럽게 고택을 접할 일이 많았다. 고택의 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들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뇌리를 스쳐갔다. 성냥갑처럼 획일화된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오직 고택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한옥의 감성을 찾아 길을 나섰다.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에는 종가의 종택과 서원이 많다. 그중, 유독 내 마음을 이끄는 '도산 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원은 나지막한 산을 두르고 앞으로 낙동강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의 풍경이 펼쳐졌다. 도산서원(경북 안동시 도산면)은 퇴계 선생이 타계한 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스승과 제자가 시대를 달리하며 완성한 뜻깊은 곳이다. 퇴계 선생이 생전에 직접 제자들을 가르쳤던 도산서당은 서당과 서원이 합쳐진 형태로 단아함과 절제미가 독보적이었다. 역시 "한국의 서원"이라는 명칭으로 불릴 만큼 기왓장 하나하나조차 기품이 느껴졌다.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서원 입구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노거수들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 의연하게 서서 우리를 맞이해주는 것 같았다. 소나무가 비바람에 맞서다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용의 기세처럼 힘찬 굴곡의 선들이 눈길을 끌었다. 소나무처럼 독야청청 선비의 정신을 그대로 품고 서 있는 듯했다. 어떤 것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곧은 마음은 지금 이 시대에도 갖추어야 할 목마른 덕목이다.
 
나의 할아버지도 서당의 훈장이셨다. 서원과 서당에 가면 아버지의 말로만 듣던 얼굴도 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숙연했다. 아버지의 선비정신과 정의감은 우리 형제자매에게 대물림된 것도 할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리라. 저 멀리 강 건너 섬처럼 우뚝 솟아있는 특별 과거를 보던 '시사단'이 보인다. 퇴계 선생이 남겼던 학문의 영향과 선비의 사기를 격려하는 상징물이다. 그 당시 수천 명의 응시자 중에 열한 명만이 합격했다 하니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험은 어려운 것이 매한가지다.
 
'열정'이라 쓰인 우물에 얼굴을 들이밀어 보았다.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퍼마시듯 부단한 노력으로 학문을 수련하라는 뜻을 간직한 우물은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고 샘솟고 있었다. 허락한다면 나도 그 우물의 물을 한 바가지 퍼서 목을 축이고 싶다. 나의 배움을 향한 끝없는 목마름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진도문을 통과해야 서원으로 들어가는데 빛이 바래서 더욱 은근한 태극무늬가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국가의 인재 양성과 선현들을 배양했던 곳은 나무 한 그루, 돌 한 개도 고민하며 선정했음을 느낀다. "경사지를 따라 한옥의 가람배치를 해서 습기로부터 취약한 목재를 보호했고 세월의 흔적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존 관리를 잘하고 있다"라는 남편의 설명을 들으며 서당 옆으로 둘러보았다.
 
그곳은 부엌 반 칸과 마루를 더 연결하여 달았다. 아마도 학생 수가 많아져서 수용공간이 모자라 지은 듯했다. 좁은 온돌 방안에 기둥과 대들보가 가로 놓여 그 당시에는 꽤 불편했겠지만 목재의 아름다운 결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문은 방문자가 갓을 벗지 않고는 드나들 수 없도록 하여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하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전교당 강학 건물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 팔작지붕이다. 기단부를 높여 위엄을 나타내었으며 양쪽 계단을 만들어 질서 있게 오르고 내리게 한 것은 선비의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라는 행동 강령처럼 보였다. 뒷산의 연둣빛을 배경으로 전교당을 향한 계단에 퇴계의 제자들이 가지런하게 두 손 모으고 앉아있는 듯 보인다. 왠지 모를 숙연함이 감도는 분위기에 압도되는 것 같았다.
 
동재는 박약재. 서재는 홍의재의 현판이 묵직하게 가슴에 안긴다. 서생들이 숙식을 하며 공부하던 서원은 직선적이지 않고 질리지 않는 채도가 햇빛을 받아 더욱더 은은한 한옥의 멋을 풍긴다. 문과 문살, 창호지의 얇은 섬유질 속속들이 파고드는 햇빛이 눈부셨다. 마치 제자를 사랑하는 퇴계의 눈빛처럼 내게도 내리쬐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이어, 광명실은 습기로부터 책을 보호하기 위해 바닥으로부터 기둥을 높이 세워 누각처럼 지어 통풍이 잘 되게 했다. 선조들의 건축 기법은 음양 이치, 풍수, 그리고 이름까지 완벽하다. 서생들이 학문을 연구하느라 수없이 드나든 흔적으로 바닥이 닳고 낡아 삐거덕거렸다.
 
마룻바닥이 꺼질까 싶어 조심조심 걸어가며 내림마루를 따라 내려온 천장의 수려한 서까래를 넋을 잃고 올려다봤다. 한옥의 천장은 올려다볼수록 신비하다. 한옥 미의 으뜸은 벽면의 검소함, 그렇다고 결코 누추하지 않는 자태에 있다. 지붕의 막새는 또 어떠한가. 화려하나 결코 사치스럽지 않았다. 옛 선조들의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따스한 배려가 느껴지는 부분이었음을.
 
정우당이란 연못 주변에는 관기 두향을 생각하며 심었을 매화 나뭇가지에 매화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퇴계의 유언 "저 매화에 물을 주거라"의 그 매화를 보는 듯했다. 봄바람 사이로 만개한 환상적인 매화꽃의 걷잡을 수 없는 만발의 몸부림은 퇴계와 두향의 애절한 사랑 그리움 때문일까, 매화 향을 피우며 봄볕을 부르고 있다. 매화꽃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겼을 퇴계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의 시, 구절 하나를 읊었다.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갈고닦아야 매화가 될까(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
 
그의 시구절을 음미하면서 당시의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과 그리움, 절제의 미에 대해 젖어보았다. 언제나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경계했던 마음이 아직도 매화꽃을 피우는 듯했다. 서원을 둘러보며 비록 퇴계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학문이 후손들에게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에 큰 의의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서원을 둘러보며 고택에 대한 선망 이상으로 우아하고 멋스러움이 어우러진 곳과 함께 고매한 정신을 만나고 나오는 길. 한 오백 년 묵어온 벼루 같은,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세상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그 숭고한 헌신을 생각하며, 나 또한 주변 사람들에게 고운 빛깔로 번지는 노을처럼 그윽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댓잎 부딪히는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서생들은 도산의 철학이 곧 절대적 학문으로 받아들여지고 숭배되었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지리적으로도 철저한 자기관리 없이 녹록지 않았을 학문의 길을 가늠해 본다. 누구도 쉬이 침범할 수 없는 높은 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짐은 왜일까.
 
수려한 고택의 이음새에 마음을 빼앗긴 체 한참을 거닐었다. 누구든지 편안하게 쉬어 가도 좋았을 벤치가 여기저기 놓여있다. 나도 가만히 앉아본다. 무언가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거나, 때로 삶이 힘들어 지친 날들, 이곳을 찾아오면 좋은 기운과 힘을 얻고도 남겠다. 내게는 삶의 고단함마저도 차분하게 접어 마음속 깊은 곳에 쟁여둘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는 곳. 돌아오는 길, 선인들의 훌륭한 가르침을 따르고 먼발치에서 흉내라고 내며 살아갈 수 있다면 더는 욕심 내지 않을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제법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수상소감] 한순희 씨 "코로나 인해 답답한 일상, 소통의 통로로 느껴… 문화의 장 되길"

비가 내리는 오후에 당선 통보 받았습니다. 제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아직은 첫걸음을 내딛는 어린아이처럼 얼떨떨합니다. 용기를 내어 첫 발자국을 디뎠던 시간이 저에게 이렇게 큰 기쁨을 주시는군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어떤 문학상보다도 제게는 귀한 상입니다. 앞으로도 더 열심히 글을 쓰라는 격려처럼 느껴집니다.
 
예기치 않는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우울한 나날을 견디고 있습니다. 저 또한 소통의 부재 속에서 답답한 일상을 견디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이 공모전은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었고 소통의 한 통로가 되어주었답니다. 허술한 저의 글을 뽑아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맙다는 절을 올립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큰 상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경북신문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경북신문 이야기보따리 수기 공모전 행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훌륭한 더 많은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는 문학의 장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금 고맙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취급방침서비스이용약관이메일무단수집거부
Copyright © 울릉·독도 신문. All rights reserved.
뉴스출처 : 경북신문 (www.kbsm.net)
Admin